반응형
조선이 개항 이후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개화파 중심의 제도 개혁이 시작됐지만, 오랜 차별과 빈곤에 시달리던 민중과 구식 군인들의 분노는 폭발했습니다. 1882년 발생한 ‘임오군란’은 개화 정책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까지 불러오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임오군란의 배경, 전개, 결과를 기출 사료와 함께 살펴봅니다.
📘 기출 사료 분석 시리즈 68
임오군란(1882) – 구식 군인의 분노, 민심의 폭발
📜 기출 사료 발췌
“구식 군사에게는 한 달이 지나도 녹봉이 없고, 마른 쌀 대신 썩은 잡곡이 지급되었다. 분노한 군사들이 무장을 들고, 일본 공사관으로 몰려갔다.”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는 임오군란의 직접적 배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1882년, 오랫동안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구식 군인들이 썩은 식량을 받고 폭발하면서
한성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납니다.
이들은 개화정책의 상징인 별기군, 일본 공사관, 민씨 정권 인사 등을 공격하며,
흥선 대원군을 다시 권좌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정부는 곧 청나라에 진압을 요청,
청군의 개입으로 진압되었고, 조선은 청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됩니다.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사료에서 묘사된 사건은?
“구식 군사에게는 한 달이 지나도 녹봉이 없고, 마른 쌀 대신 썩은 잡곡이 지급되었다…”
① 갑신정변
② 임오군란
③ 병인양요
④ 동학농민운동
➡️ 정답: ② 임오군란
💡 확장 개념 정리
항목 내용
발생 시기 | 1882년 (임오년) |
배경 | 구식 군인 차별, 개화정책 반감, 민심 악화 |
주요 인물 | 흥선 대원군(일시 재집권), 민씨 일파 공격 대상 |
결과 | 청군 진압 → 대원군 납치 → 청 내정 간섭 강화 |
국제적 여파 | 일본과 조일수호조규속약 체결, 일본 공사관 신축 허용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별기군: 신식 군대로 구식 군인 차별의 상징
- 청의 간섭 강화: 군대 주둔, 내정 조언자 파견
- 일본의 불만: 조선에 외교적 보상 요구 → ‘제물포 조약’ 체결
- 근대화의 한계: 민중과의 괴리, 구체제와 신체제의 충돌 상징
✍️ 정리 한 줄 요약
임오군란은 구식 군인의 차별과 민중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으로, 이후 조선이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든 중요한 민란입니다.
반응형
'🏛 역사 톺아보기(한국사 공부방) > 📂 한능검 기출 사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능검 기출 사료 70 - 거문도 사건과 조선 중립화론 : 열강 사이에서 길을 찾다 (4) | 2025.04.16 |
---|---|
한능검 기출 사료 69 - 갑신정변(1884) : 조선 개화의 꿈, 3일 만에 무너지다 (0) | 2025.04.16 |
한능검 기출 67 - 개화파 vs 위정척사파 : 문을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 (2) | 2025.04.16 |
한능검 기출 66 - 강화도 조약(1876) : 조선, 세계의 문을 열다 (0) | 2025.04.16 |
한능검 기출 사료 65 - 병인양요·신미양요 : 쇄국의 벽을 넘은 서양 세력 (0) | 2025.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