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눈길 산책' 에서 본 나무들, 그리고 생각들

J.J.(제이제이) 2025. 1. 8.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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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밤, 충격적인 비상계엄이 선포되기 직전에 나는 KBS 1TV 프로그램 '소나무의 비밀'을 보고 있었다. 
KBS의 뉴스는 신뢰하지 않지만, 특집 프로그램은 가끔 보는 편이다. 
오후 10시30분쯤 됐을까. 화면에 '뉴스 특보'라는 자막이 뜨더니 곧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등장해 '반국가세력'을 자주 들먹이다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그러했듯 나 역시 계엄해제 발표 무렵께까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나는 대학교 1학년생이던 1980년 5월 17일 전두환 신군부가 전국으로 확대한 비상계엄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 속한다. 
이번 포고령에 나오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가능' '사회 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 금지'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음' 등 조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어느 정도까지 제약할 수 있는지를 경험과 직관으로 잘 아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80년 광주의 유혈사태가 번쩍 뇌리를 스쳐가기도 했다. 민주주의 훈련을 많이 받은 국민이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테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또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불안과 걱정이 교차하는 밤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TV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시시각각 현 시국의 상황과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다.
처음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계엄 사태 이후이다. 가짜 뉴스와 허위 주장, 이를 기반으로 한 선동 행위, 우리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초래하는 법질서 교란 행위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가만히 있기는 어려웠다. 내용이 상반되는 뉴스들을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고 정리하고 싶었다. 34년간 신문기자로 활동했던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도 했다.
초창기 하루 10~20명 안팎이던 방문자가 지난 6일에는 800명에 육박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앞으로는 방문자 수에 신경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정리하고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는 쪽으로 블로그를 활용할 계획이다.
 
어제는 내가 사는 곳에 눈이 내렸다. 건설이 아니라 습설이어서 아스팔트 위의 눈은 금방 녹았지만, 나무들은 가지에 눈을 잔뜩 이고 있었다. 집에서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국립공원 산자락까지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나무들을 관찰했다.
3년 전 정년퇴직한 후에는 나무, 숲, 이런 것들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가로수로 심어진 홍가시나무와 어느 주택 담벼락에 심어진 남천, 중학교 정문 주변에 심어진 은목서 위에 덮인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은목서

 

홍가시나무

 

남천

 
우리 동네 가로수로는 느티나무, 백합나무, 이팝나무가 많이 식재돼 있다. 매년 5월을 전후해 '쌀밥' 같은 꽃들을 피워내는 이팝나무의 가지 위에도 눈이 쌓여 있다. 봄부터 가을 사이에 광합성을 통해 생산한 탄수화물을 몸에 저장했으니 이 추운 겨울을 나는 데는 지장이 없으리라. 나무는 그 탄수화물의 에너지로 꽃눈과 잎눈도 피워올려 다음해 살아갈 전략을 세운다. 때마침 어느 주택 정원에 심어진 산수유에서는 겨울눈이 트여 있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생명력은 이렇게 경이롭다.
 

이팝나무

 

산수유의 겨울눈

 
계절적으로 이 때쯤 피는 꽃은 드물지만, 애기동백같은 꽃은 요즘에도 볼 수 있다. 실제로 공원 초입에 심어진 여러 그루의 애기동백은 예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새하얀 눈을 배경으로 붉은 꽃이 더 선명해보였다. 다만, 활짝 핀 꽃보다는 머금고 있는 꽃망울이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보아 만개하려면 아직 먼 것 같다. 애기동백은 동백과 달리 꽃잎이 옆으로 퍼지면서 핀다. 동백은 꽃잎이 완전히 펴지지 않은 상태로 떨어지지만 말이다.

애기동백
애기동백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 소리가 청량감을 더 해준다. 맑은 공기에 눈이 시원해지는 느낌도 받는다.  커다란 느티나무의 굵은 가지에는 보기 좋을 만큼 눈이 켜켜이 쌓였다. 눈 덮인 나무와 계곡의 바위, 하얀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파란 하늘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놀랄만큼 신비로운 자연이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이런 광경을 보면 '주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란 가사로 시작하는 찬송가 2장을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느티나무

 

하늘과 숲과 계곡

 
눈길 산책. 1년에 몇차례밖에 할 수 없는 이런 산책이 계엄선포 이후 답답했던 가슴을 다소 열어준 듯했다. 때를 알고 피는 애기동백을 보면서 사람 역시 앉을 때와 일어설 때,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 많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을 불안한 마음을 지켜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행위에 동조하는 정당인과 언론, 단체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하리라.
나는 이번 사태가 우리 세대보다는 후세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한다. 거짓과 선동, 교란이 판을 치는 세상을 물려주면 안된다는 경각심이 더 드는 것이다. 

숲 속 산책로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


우리는 이번에 머리만 좋고 양심이 없는  수많은 '법기술자'들을 봤다. 이들은 이른바 '좋은 대학'을 졸업했거나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국민의 삶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점검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건전한 사회가 유지되려면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정을 콘트롤하는 지도자를 잘 뽑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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