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에서 국회 측 김이수 변호사는 공자의 가르침을 끌어와 최종 변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김 변호사는 공자가 '백성의 믿음'을 식량과 군대보다 중시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공자가 말한 '정치에 대한 신뢰'를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헌법에 대한 신뢰',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라고 해석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의 최종변론 전문이다.
오늘 저는 신뢰와 헌법, 신뢰와 대통령에 관하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물었습니다.
공자는 대답하였습니다. "식량을 풍족하게 하는 것, 군비를 넉넉하게 하는 것,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대를 버린다."
자공은 또다시 묻습니다.
"또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린다. 예로부터 죽음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논어의 안연(顔淵) 편 제7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정치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전쟁과 굶주림에 참혹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세대라면 아마도 국방이 가장 중요할 중요한 것이고 또한 식량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살았던 B.C. 5세기 춘추 시대의 말기는 그야말로 굶주림과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시대였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에서 공자가 통찰한 정치 근본은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는 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통찰은 오늘날의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국민의 믿음,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어느 정권이나 실수와 잘못은 있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을 줄이려는 노력, 그리고 실정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인정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그러한 태도가 국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때 신뢰는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피청구인은 실패와 실정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사과도 없었습니다. 모든 잘못을 야당과 전 정권에 대한 책임 전가로 일관하였습니다.
어느덧 피청구인의 주변에서는 아집, 불통, 격노라는 말들이 흘러나왔습니다. 특히 그의 인사권 행사는 최악이었습니다. 인권을 보호해야 할 기관에 인권을 가장 무시하는 인물을 임명하였고, 청년과 국민 권익을 보호해야 할 기관에는 권력을 남용하는 인물을, 권력을 감시해야 할 기관에는 권력에 아부하는 인사를 거리낌 없이 임명하였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의혹은 피청구인의 가장 큰 리스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정에 밀착해 적극 개입한다는 말들이 정권 초부터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주가 조작, 명품백 수수 혐의 등에 대해 야당이 제출한 특별 검사 법안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고집스럽게 행사했습니다.채 상병 특검법 등 다른 법안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피청구인도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사용한 것은 국가 긴급권과 국군 통수권이었습니다.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를 척결, 곧 없애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주권자를 보호하는 데 사용해야 할 헌법상의 권력을 주권자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의 비상계엄은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요건과 절차에 전혀 맞지 않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폭력을 써서 저지하려 했으나 노렸던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계엄 실행 과정이 실패로 돌아가자 피청구인은 심지어 자신의 명령을 수행한 부하들에게조차 신의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모든 죄책을 떠넘기며 그들의 충성심을 배반하였습니다. 이러한 피청구인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얻으려 했다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헌법은 대통령이 최고의 권력을 갖고 있기에 그에게 헌법 수호 책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하는 순간은 취임식의 하이라이트이자 엄숙한 시간입니다.
헌법을 수호하고 준수하겠다는 것은 국민들과 대통령과의 약속이므로,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절대적 조건입니다. 피청구인이 위반한 헌법 규정과 원칙들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청구인은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국민들이 보유한 신뢰를 최악의 방법으로 배신함으로써 민주 공화국에 대한 반역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공자는 "정치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존립하지 못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한 "정치에 대한 신뢰"를,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헌법에 대한 신뢰,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보호하는 것들은 특별한 것들이 아닙니다.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들입니다. 민주공화국,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법 앞의 평등, 양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의 원칙 같은 것들입니다.
헌법에는 민주주의가 보호하는 이런 원칙들, 평범하지만 소중한 권리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일상에서 상식적이고 평범한 것들이지만, 결코 당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평범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어야 했고,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걸고 싸워온 이 가치는 그대로 미래로 이어져 가야 합니다.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키지 않을 때 왜곡되고 훼손되며, 결국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의 평범하고도 소중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민주주의자, 곧 깨어 있는 민주시민이 되어야 합니다.
작년 12월 3일 피청구인은 비상계엄을 선포함으로써 이 모든 원칙과 권리들을 무너뜨리려고 했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 습격 당한 그 순간에 우리는 민주공화국 최고의 권력이 오히려 민주주의와 헌법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야당을 괴물로, 민주주의 적이라고 규정한 피청구인이 스스로가 괴물이고 민주주의 적이라는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피청구인 행위는 단지 자신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킨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와 헌법, 그리고 국민들의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신뢰 모두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이제 공동체의 상식과 보편적인 원칙, 그리고 정치와 헌법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는 어느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위해서입니다.
헌법이 무너진 현실 속에서 시민들이 헌법전을 찾아 읽고 필사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헌법 조문을 읽고 필사하며 슬픔과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시민들이 민주주의와 헌법을 그 합당한 깊이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의 작동을 이해하는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이 유린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바로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가치를 침해한 권력자에 대한 탄핵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에 대한 검증은 끝났습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하지만 충성만을 받고자 했던 인물, 상식을 뛰어넘는 언동으로 일방통행을 일삼았던 인물, 손에 왕(王)자를 새기고 나타난 인물,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즐기며 역대 독재자 대통령들을 찬양한 인물, 헌법을 준수하거나 수호하기는커녕 파괴한 인물...
그가 대통령이 된 후 부끄러움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본 대리인은 감히 말씀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민주헌정사에 있어서 최대의 고비인 지점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는 재판이며 대한민국의 존립을 지키는 재판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으며 그 가치를 수호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민주주의자입니다. 부디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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