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문]국회 측 황영민 변호사 최종 변론...아이들이 기억할 진실은

J.J.(제이제이) 2025. 2. 27.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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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국회 측 대리인단의 일원인 황영민 변호사. 유튜브 캡처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에서 국회 측 황영민 변호사가 한 최종 변론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황 변호사는 학창시절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빨갱이 폭도들이 일으킨 광주사태'라고 배웠으며,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라고 회고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번 비상 계엄을 어떻게 기억하고, 피청구인의 행위를 무엇이라 배우고 자라나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됐던 저처럼 저의 아이와 그리고 대한민국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황 변호사의 최종변론 전문이다.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 그 아이들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피청구인의 행위를 무엇이라 배우고 자랄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국회에 착륙한 군용 헬기와 의사당에 난입한 군인들, 현직 대통령 체포와 이를 막는 경호원들, 법원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일군의 무리들, 그리고 바로 이 심판정에서 계엄은 경고성이고 계몽령이라는 피청구인의 태도, 피청구인이 일으킨 비상계과 내란 사태, 두 달이 넘는 기간 매일 벌어지는 혼란 속에서 지금 아이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계엄을 선포한다"는 웃지 못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학교와 가정에서 개헌이 무엇인지, 대통령이 왜 그랬는지, 그리고 탄핵은 무엇이고 또 헌법과 민주주의는 또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두 달 동안 제 아이로부터 어떤 이유로 제가 늦게 들어오고 주말에도 함께 놀지 못하는지, 우리 일상에 발생한 이 사건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역사 책에서나 봤던 계엄으로 인해 헌법을 공부해야 하고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답해 주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곤혹스러운 것은 비단 계엄이나 탄핵, 대통령의 헌법 수호 의무와 같은 어려운 개념이나 헌법 조항을 어떻게 설명할지가 아닙니다.

질문하는 아이들에게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 사태가 있을 때 공공의 안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엄을 선포할 수 있어"라고 계엄 요건을 설명해 주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질문은 항상 똑같습니다. "그래서 왜 대통령은 계엄을 한 거야?"라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곤혹스러운 이유는 근본적으로 답해줄 수 없는 바로 이 질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화로웠던 12월 그날에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는지, 군인들을 국회 의사당에 보낸 이유가 무엇인지,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한 까닭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탄핵 심판의 변론이 마무리되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피청구인으로부터 '왜 그랬는지'라는 질문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청구인에게 묻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셨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지금이라도 대통령다운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대통령 배우자의 범죄에 대한 특검법 발의, 정부가 편성하지도 않은 예산을 삭감했다는 이유, 일부 공직자에 대한 탄핵 소추 등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이른바 야당과 국회의 반국가적 행위들이 계엄을 선포할 국가 비상 사태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피청구인과 사전 공모한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고 어떤 국무위원도, 이 재판정에서 증언한 국무총리도, 경제 수석도, 안보 실장도, 국정원장도 동의하지 못한 국가 비상 사태는 피청구인의 몽상에 불과합니다.

 

억지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야당과 국회의 견제로 피청구인이 원하는 정책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는 것이 유일한 이유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회는 대화 타협의 대상이지, 억압과 척결의 대상이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번 탄핵심판 과정에서 피청구인 주변의 사람들이 피청구인에게 이 당연한 대화와 타협조차 설득한 적이 없고, 그저 피청구인을 왕처럼 떠받들며 피청구인의 격노에 동조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떠받는 분위기 속에서 피청구인은 진짜 자기가 제왕이라고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자신을 제왕이라고 착각한 피청구인은 왕의 권한을 견제하려는 세력을 적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왕으로 대해 주는데, 도대체 왜 국회만 자신을 왕으로 인정해주지 않느냐며 분노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피청구인은 군대를 동원하여 진짜 제왕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이번 계엄은 국회에 대한 경고용이었다라는 피청구인의 변명을 믿어본다면 피청구인은 아마도 군사력을 과시하여 제왕의 권위를 떨쳐 보이려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왕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대통령을 왕이라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왕으로 대우하는 순간,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을 제왕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민주공화국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재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왕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선언하고, 그 사실을 민주공화국의 구성원으로 자라날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주변의 어른들은 1980년에 광주를 광주 사태라고 불렀습니다.그리고 저는 빨갱이, 반정부 반란군이 도시를 점령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지만 리더십 있는 어떤 군인이 용감한 공수 부대원들을 보내서 신속히 진압했다고 배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고통의 시간을 보냈고, 17년이나 지나서야 법원은 전두환을 내란 우두머리라고 확인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였습니다. 저도 그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날의 진실을, 광주 사태가 아니라 5.18 민주화 운동이었다는 것을, 빨갱이 폭도가 아니라 신군부에 저항했던 시민들이었다는 것을, 나라가 혼란했던 것이 아니라 무도한 일부 군인들이 정권을 찬탈하고 비상 계엄을 선포했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생각해 봅니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이번 비상 계엄을 어떻게 기억하고, 피청구인의 행위를 무엇이라 배우고 자라나야 할까요? 5.18 민주화 운동을 폭도가 일으킨 광주 사태라고 배웠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진실을 알게 됐던 저처럼 저의 아이와 그리고 대한민국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피청구인이 말하는 경고성 계엄을 그럴 법하다고 생각하고, 계엄령을 계몽령이라고 한없이 가볍게 생각하고,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미화하는 내용을 보고 듣고 자라는 제 아이, 우리나라의 아이들을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대한민국을 살아갈 우리 아이들의 배움과 사고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12월 3일 비상계엄을 실행한 피청구인의 행동에 대한 헌법 재판소의 평가가, 또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피청구인의 인식에 대한 헌법 재판소의 평가가, 오늘의 아이들이 배우고 자라날 역사의 진실을 그리고 내일의 대한민국이 어떠할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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