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사과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참으로 어정쩡한 사과였다."
2월11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원내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보고 느낀 소감이다.
권 원내대표는 40분 가량의 연설 첫 머리에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을 한마디 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탄핵소추와 구속 기소까지
국가적으로 큰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불안과 걱정이 얼마나 크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깊이 통감합니다."는 말 뒤에 '사과한다'는 말을 붙였다.
그런데,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려서 사과한다는 것인가.
사과라는 것은 잘못을 인정한 뒤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얼 잘못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또한 사과는 반성과 성찰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무엇을 반성했는지를 전혀 짐작하기도 어렵다.
이런 사과야 말로 사과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의 이런 식의 사과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발언과도 닮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7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국정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으로서의 절박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들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렸습니다.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윤 대통령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려서 사과한다"고 했다.
그 정도 이유라면 "송구하다"고 하지, 왜 "사과한다"는 표현을 쓰는가. 이것을 사과라고 할 수 있는가.
제대로 사과하려면 윤 대통령은 취임 때 '국헌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자신이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려고 시도한 것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하고,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의 리더로서 그런 책임을 언급해야 했다.
권 원내대표의 연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대다수 언론은 혹평을 했다. 민주당과 민주당 대표에 대한 공격에만 집중했을 뿐, 여당으로서 제시해야 할 비전은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40분간의 연설 도중 ‘이재명’은 18번, ‘민주당’은 44번이나 나왔다. 윤 대통령의 시대착오적 계엄으로 빚어진 경제 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 집권 여당으로서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은 없이 ‘남 탓’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21대 국회 막바지에 정부와 여당이 합의 직전 무산시켰던 연금개혁 좌초도 민주당 탓으로 돌렸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비상계엄 이후 권성동 원내대표가 무리한 주장을 일삼아왔다는 점은 여러 차례 포스팅을 통해 지적한 바 있다.
사실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는 데에는 권 원내대표의 언행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민심과는 동떨어진 것들이었다.
더구나 권 원내대표는 '오랜 친구'인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리 분별 없이 감싸고 돌고, 대학 후배인 이재명 대표에게는 사리 분별 없이 매몰차게 대하고 있다.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할 여당의 리더가 당리(黨利)와 사리(私利)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