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림(54·사법연수원 30기) 춘천지검장이 2월 12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놓고 말이 많다.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한 헌재를 보며’란 제목으로 헌법재판소를 비방한 글이다.
공직자가 내부망에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올리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상식에 어긋나고 왜곡된 역사의식이 반영돼 있다면 문제다. 또 어떤 의도를 갖고 쓴 글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검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구나 '친윤 검사장'의 '윤석열 구하기'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봤다.
이 지검장의 글 중 논란이 되는 내용
"일제 재판부는 안중근 의사가 '할 말을 다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할 때까지 주장을 경청했다. 그 진술은 무려 1시간 반에 걸쳐 이뤄졌다. 헌법재판소 문형배 재판관은 지난 6차 변론에서 증인신문 이후 3분의 발언 기회를 요청한 대통령의 요구를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라고 묵살했다. 정청래 의원의 요구에 응해 추가 의견기회를 부여한 것과 극명히 대비됐다. 대통령의 설명 기회와 증인 신문 또한 불허한 헌법재판관의 태도는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뜩이나 지금의 헌재는 일부 재판관들의 편향성 문제로 자질 등을 의심받고 있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 삼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문제점 있나
1. 팩트 왜곡
우선 사실관계 왜곡이 문제다. 팩트조차 확인하지 않고 헌법기관을 비방하는 글을 썼다.
'3분 발언 기회' 요청은 2월 6일 6차 변론에선 아예 없었다.
비슷한 상황은 2월 4일 5차 변론 때 있었다. 하지만 당시 '3분 발언'을 요청한 사람은 윤 대통령이 아니라 그의 법률대리인, 윤갑근 변호사였다. 당시 윤 변호사는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인 신문을 마치고 윤 대통령이 8분 넘게 의견 진술을 마친 직후 재판부에 '추가 신문할 시간 3분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 윤갑근 변호사 "재판관님 3분만 질문을…"
- 문형배 재판관 "아닙니다. 약속을 하셨고요."
문 재판관이 말한 '약속'은 증인을 부를 경우 신청한 쪽의 주신문 30분, 반대신문 30분, 재주신문 15분, 재반대신문 15분씩 시간을 엄수하기로 한 것을 의미한다.
헌재는 1월 23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나왔을 때는 윤 대통령 본인의 신문을 허용했지만, 2월 4일 5차 변론부터는 "증인 신문은 양측 대리인만 하고, 본인이 희망하면 증인신문이 끝난 후 의견진술 기회를 드리겠다"고 공지했다. 이 기준에 따라 청구인 '국회'를 대표하는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질문할 기회를 달라고 했을 때도 허락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에 이어 의견진술하도록 했을 뿐이다.
조선일보마저도 '이는 지난 5차 탄핵심판에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증인신문을 마치고 윤 대통령이 발언을 한 직후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가 “3분만 질문하겠다”고 한 것을 문형배 소장 대행이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팩트 왜곡을 인정했다.
2. 독립운동가와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의 단순비교
안중근 의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동양평화론을 주장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현재 탄핵 심판 중인 정치인으로, 내란 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황이다.
두 사람의 행적과 맥락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3. 두 사건간 법적 절차의 차이도 간과
이 지검장은 일제 재판부가 안중근 의사의 발언을 경청했던 것을 언급하며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의 발언 기회를 제한한 점을 비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직접 증인 신문 등을 제한한 헌재의 조치는, 증인들이 압박감 없이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재판관들이 평의를 거쳐 결정한 것이고 대통령 측 또한 이를 수용했다.
또한 안중근 의사의 최후 진술은 사형 선고 직전에 이뤄진 것이고, 윤 대통령 측의 3분 발언 요청은 변론이 진행되던 와중에 나온 것이다. 두 사건간 재판 절차의 단계가 다르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구잡이 비판을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알았다고 해도 문제이고 몰랐다고 해도 문제이다.
4. 검찰의 중립성 및 공직자 품위 유지 위반
국가공무원법 제66조는 공무원의 집단행위 및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이 지검장의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된 헌법재판소를 비판하며, 특정 정치적 사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소지가 있다.
또한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일제 치하 재판부와 비교하는 표현은 과도하게 감정적인 비난으로 평가된다.
또 공직자의 품위 유지 의무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5. 윤 대통령과 개인적 친분
헌재를 향한 이 검사장의 공개 저격에 윤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친분이 작용했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이 지검장은 2005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윤 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다. 윤 대통령 취임 후인 2023년 9월에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고양지청 부부장 시절 대검 중수부로 파견 왔을 때 서초동으로 자주 부르던 후배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검사장”이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도 “이 지검장은 윤 대통령과 가까워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 된 뒤로 보직 경로가 풀렸다“며 “현직 검사가 헌법기관인 헌재를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판하는 건 법을 떠나 도덕적으로도 용서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6. 현직 검사들도 비판
일부 현직 검사들도 이 지검장의 글에 댓글을 달아 비판했다고 한다.
"식민치하 일본 제국주의 법원과 현재 우리 헌법재판소를 비교한다거나 안중근 의사님과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를 비교하는 것은 선을 넘은 것 같다"
"사형 선고 전 최후진술과 주기도 하고 안 주기도 하는 직접 증인신문 또는 발언기회는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심판 전이나 판결 전 최후진술은 충분히 보장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