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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한국사 #59 : 백제 무령왕릉 발굴의 우여곡절

J.J.(제이제이) 2025. 5.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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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한국사 #59

백제 무령왕릉 발굴의 우여곡절


1. 우연과 행운이 만든 발견

1971년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중, 한 인부의 삽날에 벽돌이 걸리면서 무령왕릉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무덤은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으로, 중국 남조 양나라의 무덤 양식과 흡사한 벽돌무덤이었다.
무령왕릉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도굴꾼들도 언덕으로 착각해 건드리지 않아, 도굴을 피하고 1,500년 만에 거의 완전한 상태로 발견될 수 있었다.


2. 졸속 발굴, 혼돈의 현장

무령왕릉의 발견 소식은 금세 퍼졌고, 구경꾼과 기자들이 몰려들어 유적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문화재관리국은 이틀 만에 급히 발굴단을 꾸려 현장에 파견했으나, 발굴 경험이 부족했고, 현장 통제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소나기까지 내리는 악조건 속에서 발굴이 시작됐고, 기자들은 발굴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결국 발굴단은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전에 서둘러 발굴을 끝내기로 결정했고, 무령왕릉 발굴은 단 17시간 만에 졸속으로 마무리됐다.


3. 유물 수습의 허점과 아쉬움

왕릉 안에는 2,0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있었지만,

  • 유물들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포대 자루에 담겨졌고
  • 현장 실측도, 체계적인 기록도 거의 남지 않았다.
    심지어 널길에 놓인 청동 숟가락은 구경꾼의 발길에 밟혀 부러지기도 했다.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동물상)는 머리의 철제 장식이 떨어진 채 발견됐고, 발굴 후에도 유물 관리와 연구가 미흡했다.

4. 발굴 이후의 반성, 그리고 재평가

무령왕릉 발굴은 한국 고고학사에서 ‘최악의 졸속 발굴’로 오랫동안 비판받았다.
발굴단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에 휩쓸려, 상상할 수 없는 짧은 기간에 졸속으로 마쳐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뒤늦게 반성했다.
발굴 직후 작성된 보고서는 내용이 부실했고, 유물의 상당수는 오랜 세월 포대 자루에 담긴 채 보관만 되었다.
이후 국립공주박물관 등에서 39년 만에 ‘무령왕릉 신보고서’ 작업이 시작되어, 체계적 재조사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5. 무령왕릉의 역사적 가치와 미스터리

무령왕릉은 주인공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묘지석이 발견된 최초의 삼국시대 왕릉이다.
도굴되지 않은 백제 왕릉에서 금관, 관장식, 봉황 장식 대도, 글씨가 새겨진 팔찌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 미술과 문화, 삼국시대 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다.
하지만 발굴의 졸속과 기록의 미흡으로, 일부 유물의 원위치와 발굴 당시 상황 등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6. 결론: 행운과 아쉬움이 교차한 한국 고고학의 현장

무령왕릉의 발굴은

  • 도굴을 피한 행운,
  • 우연한 발견,
  • 졸속과 혼돈,
  • 그리고 뒤늦은 반성과 재평가
    가 교차한 한국 고고학사의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 사건은

  •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과 발굴의 중요성,
  • 꾸준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
    을 일깨워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참고

  • 우리역사넷
  • 동아사이언스
  • 디지털공주문화대전
  • 연합뉴스
  • 네이버 블로그
  •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자료
  • 국립공주박물관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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