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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료는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청에 굴복한 사건을 보여줍니다. 이는 조선이 명분을 중시한 외교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이후 실리 외교로의 전환 계기가 되었습니다.
📘 기출 사료 분석 시리즈 ⑥
병자호란 – 청의 침입과 삼전도의 굴욕
📜 기출 사료 발췌
“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남한산성에 머무르며 고통을 함께 하였으나, 군사와 양식이 모두 다하여 마침내 청나라와 화의를 맺고 삼전도의 들판에서 항복의 예를 올렸다.”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는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전 끝에 청나라에 항복한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조선은 명에 대한 의리(사대의 명분)를 지키려다 오히려 청에 의해 침입을 받았고, 결국 삼전도에서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숙이는 항복 의식을 행해야 했습니다.
핵심 키워드:
- 남한산성 → 인조와 조정이 피신해 저항한 곳
- 삼전도 굴욕 → 굴욕적 항복, 청 중심 국제질서 수용
- 군신관계 체결 → 명분상 ‘형제국’이 아닌 ‘신하국’ 인정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사료에서 나타난 사건으로 옳은 것은? “남한산성에 머무르며 고통을 함께 하였으나… 삼전도에서 항복하였다.” ① 임진왜란 ② 정묘호란 ③ 병자호란 ④ 신미양요 ➡️ 정답: ③ 병자호란
💡 확장 개념 정리
개념 설명
병자호란 | 1636년, 청 태종의 침입 / 인조 항복 |
정묘호란 | 1627년, 후금의 침입 / 형제관계 체결 |
척화론 | 명분 중시, 청과의 외교·통상 반대 |
북벌론 | 효종 중심, 청에 대한 복수 주장 (송시열 등) |
청과의 전쟁 결과 | 조선의 외교적 굴욕, 실리외교로 전환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인조반정(1623): 광해군 폐위, 명 중심 외교 복귀
- 서인 정권: 척화론적 명분 강조
- 효종 북벌론: 실제 군사력 부족으로 실현 어려움
- 숙종 이후: 실리외교와 중화 질서 재편 수용
🏷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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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 한 줄 요약
병자호란은 조선이 명분을 지키려다 외교적·군사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청과의 군신관계를 맺는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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