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한국사 #77
고려시대 ‘팔관회’의 이면과 이교도 논란
1. 팔관회란 무엇인가
팔관회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국가 의례이자 불교 행사로, 국왕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전국적인 대행사였다. 태조 왕건은 훈요십조에서 팔관회를 연등회와 함께 가장 중시할 국가 행사로 꼽았고, 실제로 고려 전 시기 내내 공동체 의식 결집과 국가 정체성 유지의 핵심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팔관회는 불교의 팔관재계(여덟 가지 계율을 지키는 신앙)와 우리 민족 고유의 산천신앙, 토속신앙이 융합된 행사였다.

2. 불교와 토속신앙의 융합, 그리고 이교 논란
팔관회는 불교적 계율과 의식에 기반을 두었지만, 행사 내용에는 천령(하늘의 신), 오악(다섯 명산), 대천(큰 강), 용신(용의 신) 등 토속신에게 제사 지내는 의례가 포함됐다.
이 때문에 팔관회는 단순한 불교행사가 아니라, 불교와 샤머니즘, 도참사상, 민간신앙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고려적’ 종합 의례로 발전했다.
이런 다원적 성격은 고려의 민족적 통합과 중앙집권 강화에 기여했지만, 한편으로는 ‘잡신 숭배’ 혹은 ‘이교적’이라는 비판도 불러일으켰다.
특히 조선 건국 이후 유교 이념이 국가 통치의 중심이 되면서, 팔관회는 토속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음사’(사사로운 제사)로 규정되어 즉각 철폐 대상이 되었다. 조선 개창 세력은 팔관회를 ‘이교적이고 미신적인 행사’로 간주해 문화적으로도 단절을 선언했다.
3. 팔관회와 사회적·정치적 의미
팔관회는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니었다.
- 국가적 위기나 외적 침입 시 민심을 결집하고
- 왕실과 신하, 백성, 심지어 외국 사신까지 어우르는 대규모 연회와 제사로
- 고려의 국제적 위상과 다원적 천하관을 과시하는 자리였다.
또한 팔관회는 무역과 교류의 장이기도 했으며, 국가의 경제 기반 마련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팔관회는 고려 사회의 결속과 문화적 다양성, 국제성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4. 이면과 논란
팔관회가 불교와 민간신앙, 무속, 도참사상까지 포괄하는 ‘종합 종교행사’로 기능한 것은 고려 특유의 포용성과 실용주의의 산물이었지만,
- 유교적 질서가 강화된 조선에서는 ‘이교도적’, ‘미신적’이라는 이유로 폐지되었다.
- 실제로 팔관회가 국가적 행사에서 사라진 뒤, 토속신앙은 유교제례 속에 흡수되거나 민간 신앙으로만 명맥을 잇게 되었다.
결론
고려시대 팔관회는
- 불교와 토속신앙, 민간신앙이 융합된 독특한 국가 의례였으며
-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결속, 국제적 위상 과시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 유교적 이념이 지배한 조선에서는 ‘이교도 논란’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팔관회의 흥망은
- 고려의 다원적 종교관과 포용성,
- 그리고 조선의 유교적 배타성이라는
시대정신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참고문헌
- 우리역사넷, 「팔관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팔관회」
- 위키백과, 「팔관회」
- KBS WORLD, 「고려의 팔관회」
- 부산역사문화대전, 「팔관회」
- 세계불학원, 「고려시대 팔관회 행사와 팔관재 신앙」
- 고려시대 팔관회의 성격 변화와 문인층의 인식, 역사민속학회,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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