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야기와
마음 속 꽃이 함께 피는 공간

🏛 역사 톺아보기(한국사 공부방)/🕰️ 비하인드 한국사

비하인드 한국사 #79 : 왕건의 후궁 정책과 왕위 계승 다툼

J.J.(제이제이) 2025. 5. 31. 05:41

비하인드 한국사 #79

왕건의 후궁 정책과 왕위 계승 다툼


1. 왕건의 혼인 정책과 후궁 제도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통일과 왕조의 안정을 위해 전국 각지의 유력 호족들과 적극적으로 혼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정식 왕후 6명과 23명의 후궁, 총 29명의 부인을 두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각 지역 호족의 딸이었습니다.
이 혼인 정책은 단순한 사적 관계가 아니라,

  • 호족 세력을 자신의 인척으로 편입해 반란을 방지하고
  • 호족들의 협조와 충성을 유도하는 정치적 연합의 수단이었습니다.
    왕건은 혼인 관계를 맺은 호족들에게 벼슬과 토지, 성씨를 하사하며 그 지위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2. 후궁 정책의 구조와 특징

  • 왕건의 부인 중 6명은 정식 왕후로, 왕후의 소생만이 공식적으로 왕위 계승권을 가졌습니다.
  • 나머지 23명의 후궁(부인)도 각기 강력한 호족 가문 출신으로, 이들의 자녀 역시 왕위 계승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잠재적 후보였습니다.
  • 이런 다처·다후(多妻·多后) 정책은 호족 통합과 왕권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으나, 동시에 왕실 내 계승 구도를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3. 왕위 계승 다툼의 배경과 전개

왕건 사후, 각 왕후와 후궁 출신 왕자들 사이에 치열한 왕위 계승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 왕건의 유언(훈요 10조)에는 “맏아들이 현명하지 못하면 다른 아들이 계승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어, 원칙적으로 장자 상속이지만 능력에 따라 왕위가 결정될 수 있었습니다.
  • 실제로 왕후와 후궁, 그리고 그들의 외가(호족) 배경에 따라 각 왕자와 그 지지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왕위 계승 분쟁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 왕건 사후 혜종, 정종, 광종 등 초기 왕위 계승 과정에서 왕자들 간의 갈등과 숙청, 외가 세력의 개입이 이어졌습니다.

4. 혼인 정책의 장점과 한계

장점

  • 호족의 협조를 이끌어내 후삼국 통일과 왕조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고려 왕실의 정치적 기반을 전국적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한계

  • 지나치게 많은 후궁과 자녀로 인해 왕위 계승권자가 다수 등장, 왕실 내 분열과 피비린내 나는 다툼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 외가인 호족 세력이 왕실 내 권력 투쟁에 깊이 개입하며, 왕권 강화에 장애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론

왕건의 후궁 정책은 고려 초 왕실의 정치적 안정과 호족 통합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동시에 복잡한 왕위 계승 구도와 왕실 내 분열, 외가 세력의 개입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혼인·후궁 정책의 특성은 고려 왕실 문화의 중요한 특징으로, 이후 왕위 계승 분쟁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 우리역사넷, 「태조 왕건의 혼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비(古比)」
  • 네이버 블로그, 「고려의 안정을 위한 태조 왕건의 정책」
  • 네이버 블로그, 「고려 건국 후 태조 왕건의 정책」
  • K-공감, 「왕건의 정치철학」
  • 위키백과, 「태조(고려)」
  • 정용숙, 『고려 왕실 족내혼 연구』, 새문사, 1988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