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한국사 #80
고려 말 ‘홍건적’ 침입의 실제 피해
1.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침입과 전개
홍건적은 원나라 말기 중국에서 일어난 한족 농민 반란군으로, 1359년과 1361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로 고려를 침입했습니다.
- 1차 침입(1359년): 약 4만 명의 홍건적이 압록강을 넘어 의주, 정주, 인주 등 서북 지역을 점령하고, 철주와 서경(평양)까지 함락시켰습니다. 고려는 안우 장군 등 지휘관의 분전으로 서경을 탈환하고, 홍건적을 압록강 이북으로 몰아냈습니다.
- 2차 침입(1361년): 10만~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삭주, 안주, 무주 등 내륙을 거쳐 개경(개성)까지 진격, 마침내 수도가 함락되었습니다. 공민왕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개경은 수개월간 홍건적의 점령과 약탈을 겪었습니다.
2. 인명 및 물적 피해, 사회적 혼란
- 직접적 인명 피해:
홍건적의 점령 지역에서는 관료와 양민의 대량 학살, 약탈, 방화가 이어졌습니다. 기록에는 홍건적이 개경에서 사람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심지어 식인까지 했다는 내용도 전해집니다.
1차 침입에서 민간인 1만여 명 이상, 2차 침입에서는 수도와 여러 도시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되거나 피난했습니다. - 도시·농촌 파괴와 경제 붕괴:
개경과 서경 등 주요 도시가 함락·약탈당했고, 관청·왕궁·민가가 불타거나 파괴되었습니다.
농경지와 마을, 가축·식량이 약탈당해 지역 경제가 붕괴되고, 주민들은 집단 이주와 피난을 강요받았습니다. - 국가 체제의 동요:
수도 함락과 왕의 피난, 관료와 군대의 붕괴로 국가 통치 체계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습니다.
전시 동원령, 노비 해방 등 특단의 조치가 시행되었으나, 사회 질서와 민심은 극도로 불안해졌습니다.
3. 군사적 대응과 신흥 무인 세력의 성장
- 고려군의 대응:
안우, 이성계, 김득배 등 장군들은 게릴라전·청야전술 등 다양한 전략으로 홍건적을 저지했습니다.
2차 침입 때는 홍건적의 방비 허점을 노려 개경 탈환에 성공, 잔당을 압록강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 신흥 무인 세력의 부상:
홍건적 격퇴 과정에서 이성계 등 신흥 무인 세력이 두각을 나타내며, 이후 조선 건국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4. 장기적 영향과 사회 변화
- 개혁의 후퇴와 정국 혼란:
홍건적의 침입으로 공민왕의 개혁 정책이 중단되고, 왜구 침입과 맞물려 백성의 고통이 가중되었습니다.
국가 재정과 사회 질서가 크게 흔들리며, 권문세족과 무인 세력의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 고려 왕조의 쇠퇴 가속화:
수도와 주요 지역의 파괴, 인구 감소, 경제 기반 붕괴 등으로 고려 왕조의 국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결국 멸망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문화재·기록물 소실:
개경 점령과 방화로 왕실·관청의 기록, 문화재, 사찰 등도 대거 소실되어, 역사적·문화적 손실이 막대했습니다.
결론
홍건적의 침입은
- 수도 개경과 서북 지방의 대규모 파괴,
- 인명 피해와 경제적 붕괴,
- 국가 체제의 일시적 마비와 사회 혼란
을 초래했습니다.
이로 인해 고려 말 사회는 극심한 불안과 변화에 직면했고, 이는 곧 왕조 쇠퇴와 새로운 세력의 부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참고문헌
- 우리역사넷, 「홍건적의 침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건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성수복공신」
- DBpia, 「고려후기 홍건적의 침입과 안우의 군사활동」
- DBpia, 「1361년 홍건적의 침입과 공민왕의 충청지역 피난정치」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고려후기 홍건적의 침입과 안우의 군사활동」
-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 관련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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