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야기와
마음 속 꽃이 함께 피는 공간

🏛 역사 톺아보기(한국사 공부방)/🕰️ 비하인드 한국사

비하인드 한국사 #43 : 조선 불교 억압 정책 속 승려들의 저항 이야기

J.J.(제이제이) 2025. 5. 22. 20:43

비하인드 한국사 #43

조선의 불교 억압 정책 속 승려들의 저항 이야기


1. 조선의 억불 정책, 어떻게 시작됐나?

조선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나라였습니다.
고려 말 불교의 폐단과 사원의 부패, 귀족화, 국가 재정 파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조선 건국 세력(신진 사대부)은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억불정책(배불정책, 숭유억불정책)을 추진했습니다.
태종 때부터 본격화된 억불 정책은 세종 때 전국의 수많은 종파를 선교·교종 양종으로 통합하고, 국가 공인 사찰을 36사로 제한하는 등 제도적 억압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종, 연산군, 중종대에 이르러서는 도첩제(승려 자격증 제도)와 승과(승려 과거제)도 폐지되고, 승려의 신분과 자격이 박탈당하는 공식적 폐불(廢佛)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2. 산중불교와 승려의 사회적 차별

조선의 억불정책은 단순한 종교 억압을 넘어 승려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까지 철저히 박탈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승려는 도성(한양) 출입이 금지되고, 산중 사찰로 쫓겨나 ‘산중불교’로 전락했습니다.
불교는 국가의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 법적 보호와 지원 없이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승려는 천민에 가까운 신분으로 취급받았고, 사회적으로도 멸시와 차별을 받았습니다.


3. 승려들의 저항과 불교의 생명력

그러나 불교는 외부적 강제와 억압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승려들은 산중에 은거하며 교단을 재정비하고, 민간 신앙과 결합해 불교의 전통을 지켜냈습니다.
억불정책의 시대에도 승려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과 생존을 모색했습니다.

1) 은밀한 교학과 수행

공식적 승려 자격이 박탈된 뒤에도, 승려들은 산중에서 비밀리에 교학과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사찰은 산골 깊숙한 곳에 숨어 국가의 감시를 피해 불경을 강독하고, 참선과 선풍을 유지했습니다.
불교 경전의 필사와 은닉, 구전 전승 등으로 교단의 맥을 이어갔습니다.

2) 민간 신앙과의 결합

불교는 민간 신앙과 결합해 대중적 기반을 넓혔습니다.
산신, 용왕, 칠성 등 토착 신앙과 불교의 신앙 체계가 융합되며, 민중의 삶 속에 깊숙이 뿌리내렸습니다.
사찰은 마을의 안녕, 질병 치유, 풍년 기원 등 민간의 기복적 요구에 응답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3) 사찰 경제의 자립과 재건

국가의 지원이 끊긴 뒤, 승려들은 사찰 경제의 자립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농사, 방앗간, 목공, 약초 채집 등 자급자족형 경제 구조를 만들었고, 일부 사찰은 지역 사회의 경제적 중심지로 기능하기도 했습니다.


4. 임진왜란과 의승군의 저항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억불정책으로 고통받던 승려들은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해 ‘의승군(義僧軍)’을 조직해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섰습니다.
사명대사, 휴정(서산대사) 등 고승들은 전국의 승려를 규합해 의병 활동을 펼쳤고, 왜군에 맞서 전투와 정보 수집, 후방 지원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의승군의 활약은 조선 사회에 불교의 사회적 효용성과 애국적 역할을 각인시켰고, 이후 불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명종대의 불교 부흥과 다시 시작된 억불

명종대에는 문정왕후의 지원으로 불교가 일시적으로 부흥했습니다.
승과가 부활하고, 사찰 중건이 허용되었으며, 불교의 공식적 위상이 잠시 회복됐습니다.
그러나 문정왕후 사후, 다시 억불정책이 강화되며 불교는 또다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6. 조선 후기의 불교와 승려의 사회적 역할

조선 후기에도 불교는 민간 신앙과 결합해 폭넓은 종교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사찰은 민중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교육, 의료, 구휼 등 다양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승려들은 산중에서 교학과 수행을 이어가며, 불교의 전통을 지키고 계승했습니다.


7. 결론: 억압 속에서 피어난 저항과 생명력

조선의 불교 억압 정책은 승려와 사찰, 불교 교단을 제도권 밖으로 내몰았지만,
승려들은 산중에서 은밀하게 교학과 수행을 이어가고, 민간 신앙과 결합해 불교의 생명력을 지켜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승군의 활약은 불교가 단순히 억압받는 종교가 아니라, 조선 사회의 위기 속에서 저항과 구국의 주체로 거듭났음을 보여줍니다.

억불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의 저항과 불교의 생명력은
한국 종교사와 민중 문화의 중요한 뿌리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 문헌

  • 우리역사넷, 「조선시대 불교 정책의 시대적 추이」
  • 위키백과, 「억불 정책」
  • sillokwiki, 「억불(抑佛)」
  • 현대불교, 「조선은 과연 '숭유억불'의 시대였을까」
  • 광주일보, 「조선시대 숭유억불 이론 정당한가」
  • 네이버 블로그, 「숭유억불의 조선시대」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