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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검 기출 사료 136 - 광해군의 전후 복구와 대동법 : 실리 외교와 조세 개혁

J.J.(제이제이) 2025. 4. 2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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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임진왜란 이후 전후 복구와 광해군의 중립 외교,
그리고 대동법 시행에 관한 내용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국토의 복구와 행정·재정 개혁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광해군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쳐 외교적 안정을 도모했고,
대동법을 시행하여 조세 부담의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해군 대의 전후 복구 노력과 대동법의 의미를 기출 사료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 한능검 기출 사료 136 

광해군의 전후 복구와 대동법 – 실리 외교와 조세 개혁

 

 

📜 기출 사료 발췌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실리를 꾀하니, 조정에서는 이를 '중립외교'라 불렀다.”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호서 지방에 대동법을 처음 시행하니, 토산물 대신 쌀·베·돈으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폐허가 된 성과 민가를 복구하고, 유랑민을 돌아보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들은 광해군이 임진왜란 이후 실리 외교를 펼치고,
조세 개혁과 복구 정책을 추진한 사실
을 보여줍니다.

  • 중립 외교: 명(후기 국력 쇠약)과 후금(신흥 강국) 사이에서 실리 추구
  • 대동법 시행(1608, 경기도 → 1620 호서까지 확대): 특산물 납부 폐지 → 쌀·포·전 납부
  • 전후 복구: 인구 회복, 농경지 정비, 민가·성곽 복원

📍 광해군의 개혁 정책 요약

정책 내용 의의

중립 외교 명·후금 사이 외교적 줄타기 전쟁 재발 방지, 외교적 실리 확보
대동법 토산물 대신 쌀·베·돈 납부 조세의 공평성 확보, 농민 부담 경감
양전사업·호구 조사 농지 재조사, 호적 정비 세원 회복
전후 복구 성곽·도시·농토 복구, 민심 수습 국가 재건 기반 마련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정책을 시행한 조선의 왕은 누구인가?
“조세를 토산물이 아닌 쌀과 돈으로 통일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였다.”
① 세종
② 광해군
③ 인조
④ 영조
➡️ 정답: ② 광해군


💡 확장 개념 정리

항목 설명

대동법 공납제 폐지, 수취 제도 개편의 시작
방납 폐지 중간 수령·대납 상인의 폐단 제거
중앙집권 강화 공인제도 도입(상인 관리로 변함)
인조반정(1623) 실리 외교 반대 → 광해군 폐위, 인조 즉위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임진왜란의 여파: 인구·토지 감소 → 재정 악화
  • 공인의 등장: 대동법 시행과 함께 활동 시작
  • 광해군의 평가: 개혁적이지만 정치 기반 약함 → 반정 발생
  • 인조반정: 명에 대한 형식적 충성 강조 → 후금과 전쟁(정묘·병자호란)

 

✍️ 정리 한 줄 요약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의 실리 외교를 펼치며 조선의 외교적 위기를 모면하고,
대동법 시행과 복구 정책을 통해 전후 사회 재건과 조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다음 137편에서는 인조반정 이후의 정묘·병자호란, 그리고 북벌론의 등장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 137편도 내일 이어가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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