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임진왜란 이후 전후 복구와 광해군의 중립 외교,
그리고 대동법 시행에 관한 내용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큰 피해를 입은 조선은
국토의 복구와 행정·재정 개혁이 절실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광해군은 후금과 명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쳐 외교적 안정을 도모했고,
대동법을 시행하여 조세 부담의 공정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광해군 대의 전후 복구 노력과 대동법의 의미를 기출 사료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 한능검 기출 사료 136
광해군의 전후 복구와 대동법 – 실리 외교와 조세 개혁
📜 기출 사료 발췌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실리를 꾀하니, 조정에서는 이를 '중립외교'라 불렀다.”
–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호서 지방에 대동법을 처음 시행하니, 토산물 대신 쌀·베·돈으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폐허가 된 성과 민가를 복구하고, 유랑민을 돌아보게 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들은 광해군이 임진왜란 이후 실리 외교를 펼치고,
조세 개혁과 복구 정책을 추진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 중립 외교: 명(후기 국력 쇠약)과 후금(신흥 강국) 사이에서 실리 추구
- 대동법 시행(1608, 경기도 → 1620 호서까지 확대): 특산물 납부 폐지 → 쌀·포·전 납부
- 전후 복구: 인구 회복, 농경지 정비, 민가·성곽 복원
📍 광해군의 개혁 정책 요약
정책 내용 의의
중립 외교 | 명·후금 사이 외교적 줄타기 | 전쟁 재발 방지, 외교적 실리 확보 |
대동법 | 토산물 대신 쌀·베·돈 납부 | 조세의 공평성 확보, 농민 부담 경감 |
양전사업·호구 조사 | 농지 재조사, 호적 정비 | 세원 회복 |
전후 복구 | 성곽·도시·농토 복구, 민심 수습 | 국가 재건 기반 마련 |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정책을 시행한 조선의 왕은 누구인가?
“조세를 토산물이 아닌 쌀과 돈으로 통일하여 백성의 부담을 줄이고자 하였다.”
① 세종
② 광해군
③ 인조
④ 영조
➡️ 정답: ② 광해군
💡 확장 개념 정리
항목 설명
대동법 | 공납제 폐지, 수취 제도 개편의 시작 |
방납 폐지 | 중간 수령·대납 상인의 폐단 제거 |
중앙집권 강화 | 공인제도 도입(상인 관리로 변함) |
인조반정(1623) | 실리 외교 반대 → 광해군 폐위, 인조 즉위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임진왜란의 여파: 인구·토지 감소 → 재정 악화
- 공인의 등장: 대동법 시행과 함께 활동 시작
- 광해군의 평가: 개혁적이지만 정치 기반 약함 → 반정 발생
- 인조반정: 명에 대한 형식적 충성 강조 → 후금과 전쟁(정묘·병자호란)
✍️ 정리 한 줄 요약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의 실리 외교를 펼치며 조선의 외교적 위기를 모면하고,
대동법 시행과 복구 정책을 통해 전후 사회 재건과 조세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다음 137편에서는 인조반정 이후의 정묘·병자호란, 그리고 북벌론의 등장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 137편도 내일 이어가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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