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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검 기출 사료 137- 정묘·병자호란과 북벌론 : 명분을 지키다, 실리를 놓치다

J.J.(제이제이) 2025. 4. 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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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인조반정 이후 정묘·병자호란의 발생과 대응,
그리고 북벌론의 등장 배경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 한능검 기출 사료 137

정묘·병자호란과 북벌론 – 명분을 지키다, 실리를 놓치다

광해군의 실리 외교를 부정하고 즉위한 인조 정권은
명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며 후금(청)과의 외교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은 두 차례의 침략, 즉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고
굴욕적인 강화 이후에는 북벌론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정묘·병자호란과 북벌론의 배경과 내용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 기출 사료 발췌

“후금이 침입하여 왕은 남한산성에 머물렀고, 강화가 이루어진 후 신하들은 삼전도의 굴욕을 겪었다.”
– 《조선왕조실록》 인조실록

“병자년, 청의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하였다. 조정은 사대의 예를 어긴 죄로 참회하였다.”
– 《승정원일기》

“대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이 대두되었고, 송시열은 이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 《실록》 현종조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들은 인조 정권의 친명 배경 아래 벌어진 후금(청)과의 전쟁,
그리고 그 굴욕적 결과로 인해 등장한 북벌론의 명분 중심 정치 흐름을 보여줍니다.

  • 정묘호란(1627): 후금 1차 침입 → 형제 관계 체결
  • 병자호란(1636): 청 태종의 침입 → 삼전도의 굴욕, 군신 관계 체결
  • 북벌론: 효종 중심 / 송시열 등 사대부의 대청 복수론 → 실제 실행 X

📍 정묘·병자호란과 북벌론 요약

사건 연도 결과

정묘호란 1627 후금과 형제 관계, 인조 강화도 피신
병자호란 1636 청과 군신 관계 체결, 삼전도에서 항복
북벌론 대두 효종~숙종 대 실제 실행 불가, 사대 명분 정치화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사건에서 조선의 외교적 위치 변화로 알 수 있는 것은?
“청 태종이 침입하자 조선 왕은 남한산성에서 항복하였고, 삼전도에서 절을 하였다.”
① 형제 국가로 인정받음
② 군신 관계 수용
③ 청과의 전쟁에서 승리
④ 명과의 관계 강화
➡️ 정답: ② 군신 관계 수용


💡 확장 개념 정리

항목 설명

인조반정(1623) 광해군 폐위, 명분 외교 강화
후금 → 청 국호 변경(1636), 대외 팽창
남한산성 인조 45일 고립 → 결국 항복
송시열 서인, 북벌론 주장 → 효종 뒷받침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삼전도의 굴욕: 조선왕이 청 황제에게 삼배구고두례
  • 효종의 북벌론: 실질보다는 정통성과 자존심 회복 목적
  • 군사적 준비 부족: 북벌은 계획만 존재, 실행은 좌절
  • 사대·명분 정치의 영향: 실리보다 의리를 중시한 외교 정책

 

✍️ 정리 한 줄 요약

광해군의 실리 외교를 뒤엎은 인조 정권은 정묘·병자호란을 자초하였고,
굴욕적인 강화 이후에는 명분을 중시한 북벌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 다음 138편에서는 현종~숙종 대 붕당 정치의 전개와 환국 정치,
그리고 당파 간 정국 운영 변화를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해드릴게요.

👉 138편도 오늘 이어가실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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