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이후 일본은 강압적인 무단통치의 한계를 느끼고, 겉으로는 유화적인 '문화통치'로 전환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통제 방식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이에 맞서 우리 민족은 언론·교육·문화를 통한 저항을 이어갑니다. 이번 글에서는 문화통치의 특징과, 이에 대응한 민족 문화 수호 운동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 기출 사료 분석 시리즈 81
문화통치와 민족 문화 수호 운동 – 달라진 식민 통치, 그러나 저항은 계속된다
📜 기출 사료 발췌
“일제는 조선인의 언론과 교육에 간섭하면서도 이를 허용하는 척하며, 경찰 제도를 개편하고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다.”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표방한 ‘문화통치’ 정책의 이중적 성격을 설명합니다.
- 표면상 변화: 조선 총독에게 민간인도 임명 가능(하지만 실제론 계속 군인 총독)
- 경찰 제도 개편: 헌병 경찰 → 보통 경찰로 변경 (여전히 탄압적)
- 언론·교육 허용: 조선일보(1920), 동아일보(1920) 등 민간 언론 창간
- 교육 기관 설립 제한: 고등 교육은 억제, 일본어 교육 강화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강력한 검열과 탄압이 존재했으며, 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식민지 지배 체제는 유지되었습니다.
이 시기, 우리 민족은 문맹 퇴치 운동(브나로드 운동), 민립대학 설립 운동, 한글 보급과 역사 연구 등을 통해 문화를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사료는 어떤 시기의 일제 식민지 정책을 설명한 것인가?
“언론과 교육을 허용하는 척하며, 경찰 제도를 개편하고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다.”
① 무단통치기
② 문화통치기
③ 민족말살기
④ 중일전쟁기
➡️ 정답: ② 문화통치기
💡 확장 개념 정리
항목 내용
시기 | 1919년 |
명칭 | 문화통치(겉은 유화, 속은 탄압) |
언론 | 조선일보, 동아일보 창간 → 항일 기사·한글 보급 |
교육 | 민립대학 설립 운동(이용익 등), 한글 연구, 사학 교육 |
주요 운동 | 브나로드 운동(문맹 퇴치), 역사 교육, 국어강습소 운영 등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조선어학회 활동: 한글 보급·사전 편찬 추진 → 훗날 ‘조선어학회 사건’ 탄압
-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1936): 손기정 선수 사진에서 일장기 지움 → 정간
- 민족주의 사학 등장: 신채호, 박은식 등 → 민족 자주사관 강조
- 문맹 퇴치 운동: 학생·지식인이 농촌에 들어가 한글 교육
✍️ 정리 한 줄 요약
문화통치는 일제가 3·1운동 이후 표면적으로 유화정책을 펼쳤지만, 실제로는 탄압적 식민통치였으며, 이에 맞서 조선인들은 언론·교육·문화를 통해 자주성을 지켜나갔습니다.
'🏛 역사 톺아보기(한국사 공부방) > 📂 한능검 기출 사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능검 기출 83강 - 의열단과 한인애국단 : 죽음을 무릅쓴 항일 투사들 (0) | 2025.04.18 |
---|---|
한능검 기출 82강 - 봉오동·청산리 전투 : 독립군의 총성, 일본을 놀라게 하다 (3) | 2025.04.18 |
한능검 기출 80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망명 속에서도 타오른 독립의 불꽃 (0) | 2025.04.17 |
한능검 기출 79강 - 3·1운동 : “대한 독립 만세!” 민족의 외침이 울려 퍼지다 (2) | 2025.04.17 |
한능검 기출 77 - 애국계몽운동과 신민회 : 교육으로 민족을 일으키다 (0)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