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조선은 개화와 전통의 갈등 속에서
극심한 내외부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 중심에는 구식 군인의 반란으로 촉발된 ‘임오군란(1882)’과
급진 개화파가 주도한 ‘갑신정변(1884)’이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조선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으나,
결국 외세의 개입 속에서 실패로 끝나며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이 두 사건을 기출 사료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한능검 기출 사료 145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 구체제와 신체제의 충돌
📜 기출 사료 발췌
“구식 군인들이 수개월째 녹봉을 받지 못하고, 썩은 쌀을 지급받자 들고일어났다.”
– 《임오군란 관련 기록》, 『승정원일기』
“급진 개화당은 3일 천하의 정권을 잡고 새로운 개혁 정강을 발표하였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다.”
– 《갑신정변 관련 기록》
“우리는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독립 국가를 세울 것이며,
신분 차별을 철폐하고 문벌을 폐지한다.”
– 《14개조 정강》 중에서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들은 19세기 후반, 조선 사회 내부의 모순과
외세의 개입 속에서 발생한 두 개의 큰 정치적 사건을 보여줍니다.
- 임오군란(1882):
- 원인: 구식 군인의 차별 + 민중 불만
- 결과: 일본 공사관 불태움, 왕비 피난 → 청군 개입 → 청 내정 간섭 강화
- 갑신정변(1884):
- 주도: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
- 목표: 자주 독립, 신분제 폐지, 내정 개혁
- 결과: 청군 개입 → 3일 만에 실패
📍 임오군란 vs 갑신정변 비교 정리
항목 임오군란 (1882) 갑신정변 (1884)
주체 | 구식 군인 + 민중 | 급진 개화파 |
성격 | 보수적 반란 (구체제 옹호) | 근대화 개혁 시도 |
외세 개입 | 청군 → 군사적 진압 | 청군 → 정변 진압 |
영향 | 청 내정 간섭 심화, | |
제물포 조약 체결 | 개화파 몰락, | |
일본 세력 일시 후퇴 | ||
대표 문서 | 없음 (진압 중심 사건) | 14개조 정강 |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내용과 관련된 사건으로 옳은 것은?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 평등의 권리를 확립하며,
청과의 사대 관계를 청산한다.”
① 임오군란
② 갑신정변
③ 동학농민운동
④ 갑오개혁
➡️ 정답: ② 갑신정변
💡 확장 개념 정리
개념 설명
제물포 조약 (1882) | 임오군란 후 일본과 체결 / 배상금 + 공사관 경비 허용 |
14개조 정강 | 갑신정변 시 발표한 개혁안 / 근대적 개혁 내용 포함 |
청의 내정 간섭 | 군사 주둔 + 내정 고문 파견 |
한성조약 (1885) | 갑신정변 후 일본과 체결 / 배상 + 재발방지 약속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온건 개화파 vs 급진 개화파: 개혁 방식과 외세 의존 여부 차이
- 청·일 세력 경쟁 본격화: 갑신정변 → 텐진 조약 체결
- 자주 개혁 실패의 반복: 외세 개입 → 내부 개혁 좌절
- 개혁 의식 확산의 기초: 비록 실패했지만, 근대화 담론은 이어짐
✍️ 정리 한 줄 요약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은 각각 보수와 개혁의 입장에서
조선의 체제를 흔들었지만, 외세 개입 속에서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 다음은 한능검 기출 사료 146: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 백성의 봉기, 나라를 바꾸다 편으로
바로 이어갑니다.
'🏛 역사 톺아보기(한국사 공부방) > 📂 한능검 기출 사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능검 기출 사료 147 -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 외세 속 왕권의 흔들림 (1) | 2025.04.24 |
---|---|
한능검 기출 사료 146 -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 백성의 봉기, 나라를 바꾸다 (0) | 2025.04.24 |
한능검 기출 사료 144 - 개화 정책과 위정척사 운동 : 전통을 지킬 것인가, 문을 열 것인가 (0) | 2025.04.24 |
한능검 기출 사료 143 - 강화도 조약 : 조선, 바다를 열다 (4) | 2025.04.24 |
한능검 기출 사료 142 - 흥선대원군의 개혁 : 왕권 회복과 통상 거부의 시대 (4) | 2025.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