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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이후, 조선은 더욱 격동의 시기로 진입합니다.
1895년, 일본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켜 왕실의 권위를 짓밟았고,
고종은 이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외세 간 경쟁과 조선 내 정세의 급변을 상징하며,
대한제국 수립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한능검 기출 사료 147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 외세 속 왕권의 흔들림
📜 기출 사료 발췌
“왕비를 폐위하라는 일본 공사관의 요구가 거절되자, 일본 낭인들이 궁에 침입하였다.”
– 《조선왕조실록》 을미년 기사
“왕은 조정 대신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 《승정원일기》, 아관파천 기록
“왕비를 참혹하게 시해한 사건은, 국권이 외세에 짓밟힌 상징이 되었다.”
– 《매천야록》
🧠 해석 및 의미
이 사료들은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과,
그 직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을 설명하며,
조선의 주권이 외세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현실을 보여줍니다.
- 을미사변(1895.10): 일본 낭인 + 훈련대 → 명성황후 시해
- 아관파천(1896.2): 고종과 세자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 이동 → 친러 외교 강화
- 국내 영향: 친일 내각 붕괴, 개혁 정책 중단, 민중의 반일 감정 격화
📍 사건 흐름 요약
사건 시기 내용 및 영향
을미사변 | 1895.10 | 명성황후 시해 / 일본의 조선 지배 강화 시도 |
단발령 반포 | 1895 | 을미개혁 내용 중 하나 / 유생·민중의 저항 유발 |
을미의병 | 1895~96 | 을미사변 + 단발령 반발 / 위정척사 성향 강함 |
아관파천 | 1896.2 | 고종의 피신 / 친러 세력 대두 / 개혁 중단 |
친러정권 등장 | 1896~97 | 독립신문·독립협회 등장 배경 마련 |
📝 기출문제 예시
[문제] 다음 사건의 결과로 옳은 것은?
“왕비가 시해당하고, 국왕이 외국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① 갑신정변이 성공하였다
②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③ 친러정권이 등장하였다
④ 대한제국이 해체되었다
➡️ 정답: ③ 친러정권이 등장하였다
💡 확장 개념 정리
개념 설명
훈련대 | 을미사변 당시 일본이 지원한 친일 부대 |
단발령 | 근대식 군제 개편 상징 → 반발 심각 |
을미의병 | 유생층 중심 의병 봉기 / 항일 민족운동 시작점 |
독립신문 창간 (1896) | 아관파천 직후 서재필 주도 |
독립협회 결성 (1896) | 자강개혁운동의 서막 |
🧩 이와 함께 기억할 개념들
- 외세 경쟁 격화: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 확대 → 러시아 견제 본격화
- 민심 이반 가속: 을미사변으로 인해 반일 감정 격화 + 보수층 재결집
- 개혁 흐름 단절: 갑오개혁의 연속성 상실 → 대한제국 수립 이전 혼란기 도래
- 고종의 외교 전략 변화: 조선의 외교 노선이 일본 → 러시아 중심으로 전환
✍️ 정리 한 줄 요약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은 조선의 주권이 외세에 좌우되던 현실을 상징하며,
근대 개혁의 중단과 반일 감정, 친러 외교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 다음은 한능검 기출 사료 148:
독립협회와 대한제국 수립 – 자주독립을 향한 외침 편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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